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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람 · 2026.08.21 · 5분 읽기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선순위보다 흐름으로 일하기

얼마 전,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변화와 혁신을 위한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을 읽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기존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이야기. 여기까지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그 뒤에 부연설명처럼 한 문장이 따라왔다.

“물론 기본적인 것, 우리가 원래 해야 하는 레거시 업무들은 우선적으로 잘해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문장에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당연히 지금 해야 하는 일은 해야 한다. 우리가 책임지고 있는 운영을 내팽개치고 새로운 것만 쫓을 수는 없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세상의 변화라는 게 정말 그렇게 캐치업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 해야 할 일을 먼저 잘 끝내고, 여유가 생기면 새로운 변화를 살펴보고, 그다음 혁신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과연 지금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특히 AI처럼 몇 달 사이에도 기술과 일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는 환경에서는 더 그렇다.

왠지 이런 이야기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살을 빼려면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체중 감량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운동 몇 번 더 한다고 삶이 바뀌지는 않는다. 먹는 것, 자는 것, 움직이는 것, 생활 리듬, 환경, 습관까지 삶의 시스템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체중 감량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변화와 혁신도 비슷하지 않을까.

기존의 일을 먼저 하고, 그다음 혁신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바꾸어야 할 대상일지도 모른다.

순서가 아니라 흐름

우리는 일을 순서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A를 먼저 한다 → A를 끝낸다 → B를 한다 → 새로운 변화에 대응한다

계획을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한 것부터 하나씩 끝내는 방식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상당히 합리적인 방법이다.

문제는 세상이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A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고객은 변한다. 경쟁자는 움직인다. 기술은 발전한다. 조직의 상황도 달라진다.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새로운 가능성도 열린다.

세상은 내가 A를 다 끝낼 때까지 B를 멈춰놓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을 바라보는 방식 역시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순서가 아니라 흐름일 수 있다.

Project Thinking에서 Flow Thinking으로

예를 들어 지금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 AI를 현재 업무에 적용하는 일, 새로운 기술을 탐색하는 일, 미래를 위해 학습하는 일이 있다고 해보자.

기존의 사고라면 지금의 성과를 충분히 낸 다음 AI를 적용하고, 그것이 안정된 다음 새로운 기술을 탐색하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네 가지가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어느 하나가 끝난 뒤 다음 것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로 계속 움직이는 여러 개의 흐름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일하기를 프로젝트의 연속이라기보다 하나의 포트폴리오처럼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존의 방식이

계획 → 우선순위 → 순차 실행 → 완료

였다면,

앞으로는 조금 더

여러 흐름 → 실행 → 환경 변화 감지 → 피드백 → 자원 재배분

에 가까울 수 있다.

나는 이것을 Project Thinking에서 Flow Thinking으로의 전환이라고 생각해보고 있다.

Portfolio는 병렬로, Attention은 직렬로

그렇다고 “모든 것을 동시에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여기에서 굉장히 큰 문제가 하나 생긴다.

Distraction, 산만함이다.

세상이 병렬적으로 움직인다고 해서 나 역시 모든 일을 동시에 처리하려 하면 금세 무너진다.

자료 하나를 만들다가 다른 프로젝트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확인한다. 메일을 보다가 새로운 AI 도구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회의 자료를 정리하다가 문득 며칠 전 부탁했던 일이 떠올라 메신저를 열어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한다.

“내가 방금 뭘 하고 있었지?”

병렬적인 환경에 대응하려다가 정작 아무것에도 깊게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래서 중요한 구분이 하나 필요하다.

병렬적으로 사고하는 것과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차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Portfolio는 병렬로, Attention은 직렬로.

내가 관리하는 일과 가능성의 포트폴리오는 여러 개의 흐름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내가 쓰는 주의력은 하나의 일에 집중되어야 한다.

세상은 병렬적으로 움직이지만 인간의 주의력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순위는 자원의 배분이다

여기에서 우선순위라는 개념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다.

우리는 우선순위를 흔히 이렇게 이해한다.

“무엇부터 할 것인가?”

하지만 여러 흐름이 동시에 존재하는 환경이라면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어느 흐름에 얼마만큼의 Attention과 Resource를 배분할 것인가?”

우선순위가 일의 순서를 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원의 배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어떤 흐름에는 지금 60을 투자하고, 다른 흐름에는 20을 투자한다. 어떤 것은 작게라도 계속 유지하고, 어떤 것은 잠시 보류한다. 환경이 달라지면 다시 배분한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동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Attention Firewall

다만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또 하나의 유혹이 생긴다.

세상의 변화를 잘 감지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신호가 들어올 때마다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확인한다. 새로운 요청이 들어오면 바로 움직인다. 다른 프로젝트에 변화가 생기면 하던 일을 멈추고 들여다본다.

하지만 신호를 감지하는 것과 그 신호에 즉시 행동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어쩌면 변화가 빠른 환경에서 필요한 것은 변화에 더 빨리 반응하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변화에 지금 반응해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개인에게는 일종의 Attention Firewall이 필요하다.

새로운 신호가 들어왔을 때 곧바로 현재의 작업을 깨뜨리는 대신,

감지 → 포착 → 보류 → 판단 → 필요하면 편입

이라는 작은 완충지대를 두는 것이다.

“이것을 지금 해야 하는가?”

“아니면 나중에 판단해도 되는가?”

“이 변화가 내가 관리하고 있는 흐름의 자원 배분을 바꿀 만큼 중요한가?”

이 질문을 통과한 것만 현재의 실행에 영향을 주도록 하는 것이다.

변화 속에서 계속 살아 있게 만들 것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일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도 조금 달라진다.

많은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변화를 즉시 쫓아가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여러 흐름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지만, 지금 필요한 하나에는 깊게 집중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변화가 생기면 무작정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흐름을 보고 자신의 Attention과 Resource를 다시 배분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처음에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한다”는 말에서 작은 위화감을 느꼈다.

그 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처럼 변화가 빠른 환경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세상은 병렬적으로 움직인다.

기술도, 고객도, 경쟁자도, 조직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시야와 포트폴리오는 병렬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주의력은 유한하다.

그래서 실행은 오히려 제한적으로 직렬화되어야 한다.

결국 앞으로 잘 일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동시에 하는 능력이 아니라,

여러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지금 하나에 집중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우선순위’가 아니라,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무엇을 계속 살아 있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 순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