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위하여 — 『스크럼』을 읽고

제프 서덜랜드의 『스크럼』을 읽으며 옮겨 적어 둔 문장들이다. 메모로 흩어져 있던 것들을 버리지 않고, 한 흐름으로 이어 둔다.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간트차트는 보기에는 매우 멋지다. 문제는 차트에 적혀 있는 대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경영자들이 프로젝트에 기대하는 것은 통제와 예측 가능성이지만, 그 어떤 완벽한 계획이라도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저자가 품었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 결과물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인지를 왜 수시로 확인하지 않는 걸까. 기존의 방식을 더 나은 것으로 개선해 일을 더 빠르게,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이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들로서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뿐이다. 변화하거나, 아니면 죽거나.
속도는 팀에서 나온다
프로젝트의 완료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팀이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팀이 얼마나 빠르게 가속하냐를 봐야 완료 시점을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경영자의 핵심 업무 가운데 하나는 흐름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찾아내 제거하는 것이다. 저자는 저성장 시대에 그런 저해요소들은 비즈니스적인 손실 그 이상으로 사회에 대한 범죄라고까지 말한다. 저해요소를 없애는 것은 기업의 최우선 목표가 돼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는 자기 자신,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거짓 없이 바라봐야 하는 일이 뒤따른다. 스프린트의 말미마다 묻는 것이다. 이번 스프린트에 지나치게 많은 목표를 올려서 실패하게 된 것은 아닌가. 혹은 처음부터 다소 낮은 목표를 잡은 것은 아닌가. 다음번에는 어떻게 해야 협업의 수준을 더 높일 수 있을까. 우리 팀의 진행 속도가 늦춰진 이유는 무엇일까.
도전의 장에 서 있는 사람
책에는 루즈벨트가 소르본느 대학에서 했던 연설이 인용돼 있다. 오래 남는 대목이라 그대로 옮겨 둔다.
찬사는 도전의 장에 실제로 서 있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얼굴은 흙과 땀과 피로 범벅이 돼 있고, 꿋꿋하게 버텨내고, 실수를 범하거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실수를 하거나 결점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결실을 이뤄낼 수 없습니다.
승리도 패배도 모르는 냉소적인 사람들과, 가치 있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은 다른 장소에 있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전체를 보는 사람이 없을 때
healthcare.gov의 시스템이 엉터리로 만들어진 것은 참여한 사람들이 똑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시스템이 종합적으로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데 있었다. 각자 자신이 맡은 임무만을 수행했고, 총체적인 점검 없이 납품했으며, 사용자의 입장에서 시스템을 바라보지 않았던 것이다.
최고의 기업 팀들에게서 발견되는 특성은 세 가지였다. 높은 수준의 목표, 높은 수준의 권한, 복합적인 기능의 수행. 그리고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제품의 이름으로 답이 나온다면, 복합 기능 팀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여러 조직이 개별적으로 책임을 수행하다 보면 그 사이에 빈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브룩스의 법칙도 기억해 둘 만하다. 지연된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 인력을 추가로 투입하면 속도는 오히려 더 늦어진다. 새로 온 사람이 제 속도를 내기까지 시간이 들고, 사람이 늘수록 두뇌가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팀원이 무엇을 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 행해지고 있는 일들, 당면하게 된 문제들, 상황의 진척 정도를 모두가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스크럼 마스터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 회의의 진행을 주관하고, 정보의 공유를 책임지고, 가장 중요하게는 현재 시점에서 팀이 당면해 있는 문제들을 찾아내는 것. 이때 팀의 진짜 문제는 누구의 컴퓨터가 고장 났다든지 하는 표면적인 게 아니라, 프로세스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정한 팀원의 잘못을 찾고 비난하는 것은 스크럼의 방식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고, 미래는 문제의 해결과 서로 맞닿아 있다.
낭비에 대하여
책은 세 가지 유형의 낭비를 말한다. 불합리함, 일관성의 상실, 그리고 아무런 결과가 없는 것. 멀티태스킹이 그 대표적인 모습이다. 동시에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둘이면 업무 전환으로 시간의 20퍼센트가, 셋이면 40퍼센트가, 다섯이면 75퍼센트가 사라진다는 표가 인상적이었다. 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이는 충동을 제어하지 못해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한다.
반쯤 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일은 가치가 창출되었을 때 비로소 된 것이다. 실수가 발견되면 — 실수는 언제나 발생한다 — 발견 즉시 해결하라. 문제의 해결을 미룬다면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몸이 지치면 사람들은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고객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완수된 것이 아니라면, ‘완수한 일’ 칸으로 옮겨가지 못한다.
이야기로 일하기
인간은 세상을 이야기로 인식한다. 그래서 일을 맡길 때는 먼저 인물이나 역할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 일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인가. 이것을 만들 때는 누구의 시각으로 업무를 바라봐야 하는가. 그다음에는 원하는 결과물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고객으로서 나는 내가 원하는 책들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책들을 장르에 따라 검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문장들이 쌓여 백로그가 되고, 각 이야기에 부여한 상대적 크기의 숫자들을 합하면 그것이 곧 팀이 일하는 속도가 된다.
결과, 그리고 행복
우리는 여정 그 자체에 대해서는 보상을 받는 일이 없고, 여정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만 보상을 받는다. 사회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 대해서 보상을 한다. 그래서 스프린트 회고가 변명 위주로 진행된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회고를 하는 이유는 비난의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개선 방안을 찾는 것이다.
행복도 정량적으로 묻는다. 회사에서 당신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습니까.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음번의 스프린트에서 당신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무엇입니까. 단순히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고, 어느 정도의 행복이 이뤄졌는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한다. 백로그, 진행 중, 완료를 보드에 공개하면 어디에서 일이 막히고 어디에서 낭비가 발생하는지 금세 파악할 수 있다.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결정은 스스로 내릴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충분한 권한을 부여하고, 회사 안팎의 정보를 최대한 공개하고, 동료를 괴롭히거나 무시하는 행위에는 무관용의 원칙으로 처분하고, 업무 결과에 대해 빠르면서도 직접적인 피드백을 한다. 조직의 리더들은 자기 조직에 할 말을 하는 ‘똑똑한 바보’가 있다면 그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우선순위라는 용기
흔한 실수는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해, 모든 것이 최우선순위에 오르는 것이다.
모든 것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 — 프리드리히 2세
전투의 결과가 기체의 성능이 아니라 조종사들이 얼마나 빠르게 상황을 관찰하고 행동을 취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됐던 것처럼 — 관찰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OODA) 속도가 일을 좌우한다.
스크럼, 짧은 정리
마지막 장을 덮으며 방법론을 내 식으로 줄여 둔다. 비전을 갖고 리스크와 보상에 책임을 지는 프로덕트 오너를 정한다. 그 비전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갖춘 39명의 작은 팀을 꾸리고, 진행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찾아내 없애는 코치, 스크럼 마스터를 둔다. 백로그를 만들어 무엇을 어떤 순서로 할지 정하고, 작업 규모는 실제로 일할 사람들이 피보나치 수열 같은 상대적인 크기로 추정한다. 12주의 스프린트를 계획하되, 한번 합의된 목표는 변경하거나 추가하지 않는다.
스크럼 보드로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매일 같은 시각 15분 이내의 일일회의에서 세 가지만 확인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어제 행한 작업은 무엇인가. 오늘 행할 작업은 무엇인가. 나아가는 데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가. 일일회의는 업무보고 시간이 아니라 목표 지향의 시간이다. 스프린트가 끝나면 작업 완료의 정의에 부합하는 결과물만 데모하고 — 고객에게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완료된 것들 — 회고에서 다음 스프린트에 시도할 개선점에 합의한 뒤, 곧바로 다음 사이클을 진행한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계획을 완벽하게 만드는 데 쓰는 힘을, 자주 확인하고 빨리 고치는 데 쓰라는 것. 보고가 아니라 일 자체로 관심의 초점을 옮기라는 것.